저염(低鹽) 김치-과연 몸에 좋을까? - 조선일보 기사 발췌

소금을 줄이면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한다

최근 김치가 소금함량이 높아 나트륨 과잉공급의 원흉으로 알려져 “김치 나트륨 등급 표시제”가 장안의 화제다.

소금은 예로부터 육류와 채소류 등 저장성이 약한 음식의 부패와 변패를 방지하고, 인간의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는 힘의 상징으로 여겼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소금을 황금보다 비싼 고급 사치품으로 여겨 귀한 손님은 음식에 소금을 듬뿍 넣어 감사의 마음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예전엔 소금을 지금처럼 바닷물을 정제해 대량으로 생산하지도 못했고 전량 사람의 손으로 천일염을 만들어 매우 비쌌을 것이다. 어쩌면 배추보다도 귀했을 수도 있는데, 조상들이 이렇게 많은 소금을 넣은 것을 보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국민은 평균적으로 매일 4.9g의 나트륨(Na)을 섭취한다. 소금(NaCl)으로 따지면 12.5g인데, 일본 10.7g, 영국 9.0g, 미국 8.6g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꽤 많이 먹고 있다. 이 중 김치를 통해 약 10%(450㎎)의 나트륨을 먹는다고 하는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하루권장나트륨섭취량(2g)의 22.5%, 식약처 권장량(3.5g)의 13%에 해당된다.

최근 찬반 논란중인 “김치 나트륨 등급제”는 싱거운 김치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의 고혈압과 심혈관질환의 원흉인 나트륨 섭취를 줄이자는 좋은 취지다. 나트륨저감화운동 등 국민들의 캠페인을 이끄는 소비자운동은 박수 받을 만 하나, 정부에 대한 정책은 국가 전체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고려해 종합적이고 신중하게 제안해야 한다. 이번 김치 나트륨 등급표시제 의무화 방안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정책 제안이라 생각돼 그 문제를 짚어 봤다.

첫째, 국가 정책을 제안할 때 장기적 미래 환경을 고려치 않고 눈앞의 현실만 고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치는 현재 노인과 장년층이 많이 섭취하며,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잘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의 김치 섭취량은 점차 줄고 있으며, 미래에는 김치의 섭취를 통한 나트륨 섭취를 거의 무시해도 될 수도 있다. 정책은 백년대계로 반드시 중장기적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배추김치에 포함된 고농도 소금의 역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김치는 소금함량이 높아야만 오래 저장하는 동안 배추가 물러지거나 변패되지 않는다. 가을에 배추가 많이 생산될 때 소금으로 간을 해 발효시켜 김치를 만든 것은 겨우 내 먹기 위해 장기 보존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소금의 함량을 높여 일반 잡균이나 부패/변패 미생물을 저해하고, 고염에 저항성이 강한 유산균만 발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발효를 촉진하고 장기간 변패되지 않는 보존성 좋은 김치를 만들었을 것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하나를 얻으면 무언가 내 줘야 한다.

김치에 소금을 줄이면 반드시 다른 댓가를 치러야 한다. 저염 김치는 맛도 좋을 리 없고 유통시 보존성에 문제가 반드시 생긴다. 부패/변패균이 우글거리고 대장균과 식중독균도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 해결책으로 소금의 보존료 역할을 대체할 수단을 사용해야만 한다. 보다 낮은 온도의 냉장 보관, 유통시 cold chain 확보, 저장 시 산소 조절, 레토르트 살균포장, 숙성 지연 및 변패균 억제 첨가물 보존료 사용 등 인위적인 보존법을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원가는 당연히 높아질 것이고, 소금이 주는 건강상의 위해성을 줄이는 대신 너무나 큰 경제적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장사로 치면 밑지는 장사고, 비용편익 분석을 해 봐도 손해일 것이다.

셋째, 위해성평가 시 나트륨 자체의 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섭취량'이다. 정책입안자, 영양학자들도 건강을 위해 식품에 포함된 소금함량을 줄이는 것 보다 섭취량과 식습관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치 섭취량을 줄이라 하면 “김치 덜 먹기운동”이 돼버려 국민의 호응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섭취량은 언급하지 못하고 애꿎은 생산자에게 저염 김치를 만들게 유도한 것이라 생각된다.

넷째, '등급제' 시행은 제품을 서열화시켜 최하등급인 짠 김치의 구매를 꺼리게 할 것이다. 현재 “염도 2.0% 이상은 짠맛김치, 1.6%는 보통김치, 1.2% 이하는 저염김치”로 하는 방안이 논의중이다. 아마 소비자, 특히 어린이들은 싱거운 저염김치는 좋은 김치, 고염김치(짠김치)는 나쁜 김치로 생각할 것이다. 단기 저장하거나 소금을 덜먹어야 하는 사람은 저염김치를, 장기 보존하고 짠 김치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고염김치를 구매하면 그만이다. 즉, 현재의 “영양표시제”로 그 함량을 표시하면 충분하다. 괜히 등급화해서 신호등표시처럼 소금이 많은 빨간색은 나쁜김치로 여론을 몰아갈까 심히 걱정된다.

다섯째, 우리가 김치를 세계적인 우수식품, 우리 문화의 자랑거리로 띄우기 위해서는 사소한 단점은 무시하고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치의 고나트륨을 꼬집는 네거티브 전략은 한식 세계화를 방해할 뿐이다. 세계문화재 등극이 눈 앞이고 한식 세계화의 대표식품인 김치를 띄워 줘도 모자란 때에 우리 스스로 김치를 소금 범벅의 '정크푸드'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지난번 너구리라면 벤조피렌사건 때도 인체 위해성이 없는 극미량 검출에도 불구하고 안 해도 될 리콜(회수)을 하는 바람에 힘들게 일군 수출시장이 하루아침에 흔들린 일이 있었다. 우리 스스로 안전성에 별 문제가 없는 식품을 괜히 이슈화해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수출을 방해하고, 경쟁국들에게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과 교수.